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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의 인상화/윤동주

청산은 2005. 7. 19. 13:25

? 핵심정리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작가 : 윤동주(尹東柱, 1917~1945) 운율 : 내재율
어조 : 삶의 슬픔을 노래하는 어조
성격 : 애상적, 서정적
제재 : 아우의 얼굴
주제 : 암울한 현실 속에서 느끼는 삶의 비애


붉은 이마에 싸늘한 달이 서리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발걸음을 멈추어
살그머니 애띤 손을 잡으며

'니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사람이 되지'
아우의 설은 진정코 설은 대답이다.

슬며시 잡았던 손을 놓고
아우의 얼굴을 다시 들여다 본다.

싸늘한 달이 붉은 이마에 젖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

 


? 이해와 감상

  이 시의 제목 '아우의 인상화'는 1연 2행과 4연 2행의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는 시구와 관련된다. 제목이 시사하듯 이 작품은 서정적 자아가 아우의 얼굴에서 느낀 인상을 노래하는 작품으로 2연에서 화자는 천진난만하기만 한 아우와 대화를 나눈다. 아우의 이마에 서리는 싸늘한 달은 삶의 우수나 비애와 같은 분위기와 정서를 짙게 드리우는데, 이는 일제 치하의 암담하고 우울한 시대 상황과 연관된 것일 수 있다. 윤동주의 작품들에 반영된 어둡고 답답한 현실 상황이 천진난만한 아우의 얼굴에도 드리워지는 것이다. 형은 이것을 '슬픈 그림'이라고 노래하는데 이러한 시구 속에는 팍팍한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아우를 바라보는 형의 애처롭고 안타까운 시선이 담겨 있다. 다시 말해 화자는 아우가 꿈을 지니면서도 그 꿈을 실현하지 못한 채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아우의 얼굴에서 슬픈 그림을 보게 되는 것이다. 또 형의 물음에 '사람이 되지'라고 말한 아우의 대답은 사람다운 사람이 없는 현실 속에서 사람다운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따라서 아우의 '설은 대답'은 꿈이 없는 현실에 대한 인식을 드러내는 것인 동시에 사람다운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운 현실에 대한 비판일 수도 있다.

 

? 이해와 감상

  시 중에서 어떤 문제를 설명적, 서술적으로 전해 주는 것이 있는가 하면 다만 어떤 사실을 보이기만 하면서 독자로 하여금 느끼도록 하는 작품도 있다. 위의 작품은 이중에서 후자 쪽에 가깝다 이 시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이란 형과 아우 사이의 두 마디 대화와 동작뿐이며, 설명적 성격을 띤 부분은 첫째 연과 마지막 연에 되풀이되는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라는 구절을 지적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러면 그는 왜 아우의 얼굴이 슬픈 그림이라고 하는 것일까? 그는 왜 '사람이 되지'라는 아우의 대답에 대해 '진정코 설은 대답'이라고 했을까?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앞에서 읽은 윤동주의 작품들을 잠시 생각하여 볼 필요가 있다. 어린 시절의 모든 아름다운 추억으로부터 떠나 한 사람의 어른이 된 젊은이로서 그가 본 세계는 어둡고 괴로운 것이었다. 그 속에서 부대끼며 살아간다는 일은 자신의 양심, 이상을 외면한 부끄러운 삶의 과정이거나 아니면 높은 이상과 어두운 현실 사이에서 고통을 맛보는 것을 뜻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스스로의 체험으로 알기에 그는 사랑스런 어린 아우가 장차 겪어야 할 어른으로서의 삶을 걱정스럽게 여긴다. 그러기에 그는 어린 아우의 애띤 손을 살그머니 잡으며 장차 무엇이 되겠느냐고 묻는다. 이에 대해 아우는 무심하게 '사람이 되지'라고 답한다. 그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면서 그렇게 답하는 것이다. 그러나 삶의 어려움을, 더욱이 부끄럼 없는 삶이 어려움을 겪어 온 형으로서는 그 말이 예사롭지 않다. 그 자신이 겪었던 괴로움을 그의 사랑스런 아우는 또 얼마만큼 아프게 견디어 내야 할 것인가. 그리하여 그는 다시금 아우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싸늘한 달빛에 젖은 그 얼굴이 형의 염려스러운 눈에는 슬픈 그림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슬픈 것은 아우가 아니가 그를 바라보는 형의 마음이다. 유년 시절의 온갖 아름다운 것들로부터 어쩔 수 없이 떠나 삶의 어둠을 헤쳐가야 하는 그에게 아우의 천진 난만함은 곧 자신의 잃어버린 모습이며, 여러 해 뒤에는 아우 또한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할 평화의 모습이기도 하다. 아우에 대한 따뜻한 애정, 어린 시절의 평화와 순진성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삶의 어려움에 마주 선 젊은이의 고뇌-이러한 것들이 이 시의 말들 사이에서 스며 나온다. - 김흥규 < 한국 현대시를 찾아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