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도시의 한가위야 중천에 뜬 아폴로에 처녀성까지 침범당한 달 그것밖에 더 있는가. 그건 여느 보름달과 다름이 없으며 특별한 뜻이 곁들여 있는 것 같지도 않은 평범한 것일 뿐이다.
그러나 나이 좀 든 사람으로 농어촌에서의 어린 날을 보낸 이라면 "더도 덜도 말도 가윗날만 같아라"고 했던 가윗날의 맛과 뜻을 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도 그 당시 한가위를 기쁨과 잔치의 날로서 맞이했던 기록이 보인다. 왕녀(王女)가 여공(女功)을 장려하기 위하여 나라 안의 여자를 두 패로 갈라 7월 보름부터 길쌈 경쟁을 붙여 한달 뒤인 8월 보름에 우열을 가린 끝에 진 편이 이긴 편에 주식을 바치면서 곁들여 춤과 놀이를 즐기던 풍습이 있었는바 이것이 곧 가위(嘉排)라는 것이었다.
기록이 그렇다 해도 한가위를 맞으면서의 갖가지 놀이들이 반드시 그 때에 비롯되었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농(農)을 천하의 대본으로 삼았던 시절이고 보면 그 이전부터 오곡백과 무르익고 계절은 삽상한 때에 둥근달을 보면서 흥을 돋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리라.
자연과 조상께 감사 드리면서 힘도 겨루고 놀이판도 벌였을 것임은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이 한가위의 가위를 "嘉排"라 기록해 놓고 있으나 우리 옛말을 한자로 적어 놓고 있다는 것뿐이다. 이러한 "가위"에 크다는 뜻의 "한"이 붙은 "한가위"라 하겠는데 그 한가위는 결국 "한가운뎃날"이라는 뜻이었다. 보름날은 한달의 한가운데이고 또 한달의 절반이기도 하지만 8월의 가위는 또 유독 "큰"(한) 가윗날이라는 뜻의 한가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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