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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락 짜임새의 유형 : 중괄식, 무괄식

청산은 2005. 6. 22. 20:44
단락 짜임새의 유형 : 중괄식, 무괄식 4) 중괄식 단락[뒷받침문장 + 소주제문 + 뒷받침문장] 중괄식의 단락은 소주제문이 그 중간에 놓여 있고 앞 부분과 뒷 부분에 뒷 받침문장이 나뉘어 있는 짜임새이다. 앞 부분에서 얼마쯤 서술을 한 다음에 소주제문을 보여 주고 그 뒤에 다시 보충적인 서술을 하는 방식이 중괄식이다. [보기 2.1]를 중괄식으로 고쳐 써 보면 다음과 같은 모습이 될 것이다. 줄친 부분이 소주제문이다. 가치 곧 진선미를 향해서 우리 마음은 움직이게 마련이다. 아름다운 것, 착한 것 그리고 참된 것을 발견하였을 때에 우리의 마음은 본성적으로 끌리고 세차게 움직인다. 이처럼 사람은 누구나 가치를 사랑한다. 아름다운 꽃이나 그림을 보고 기뻐하지 않은 사람은 드물며, 착한 어린이의 순진한 행동을 보거나 남을 위해서 희생을 하는 이들을 대하고 흐뭇한 마음을 가지지 않는 이는 거의 없다. 누구나 모든 일에서 거짓보다는 참다운 것을 천성적으로 좋아하고, 특히 탐구심이 강한 이들은 진리를 향해서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움직이고 그것을 위해서 자기를 오롯이 바치는 일조차 있다. 중괄식은 소주제가 단락의 중간에 묻혀 잘 드러나지 않는 흠이 있다. 단락 을 형성하는 과정에서는 편한 점이 있으나, 읽는 사람으로서 볼 때는 그 요지 파악이 힘들고, 전달 효과가 약화되기 쉽다. 일반으로 독자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단락의 첫머리와 끝 부분이기 때문에 글 중간에 들어 있는 소주제문은 잘 드러나기 어려운 것이다. 이런 점에서 중괄식 단락은 되도록 삼가는 것이 좋다. 5) 무괄식의 단락 [소주제문이 겉으로 안 나타남] 무괄식 단락은 소주제문이 표면화되지 않고 뒷받침문장들만 나열되는 것이다. 일반으로 단락은 소주제를 전개하는 것이 목표이므로, 이 경우에도 소주제문은 있게 마련이고 또 그것이 뒷받침되어 드러나야 하는 점은 마찬가지이다. 다만 무괄식에서는 그것이 단락의 표면 문장으로 나타나 있지 않고 잠재되어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이런 무괄식의 단락은 두괄식이나 미괄식에서 겉으로 나타난 소주제문을 제외하고 뒷받침문장들만 순리적으로 늘어놓은 경우라고 할 수가 있다. [보기 2.1]을 무괄식으로 바꾸어 보면 다음과 같이 될 것이다. 가치 곧 진선미를 향해서 우리 마음은 움직이게 마련이다. 아름다운 것, 착한 것 그리고 참된 것을 발견하였을 때에 우리의 마음은 본성적으로 끌리고 세차게 움직인다. 아름다운 꽃이나 그림을 보고 기뻐하지 않은 사람은 드물며, 착한 어린이의 순진한 행동을 보거나 남을 위해서 희생을 하는 이들을 대하고 흐뭇한 마음을 가지지 않는 이는 거의 없다. 누구나 모든 일에서 거짓보다는 참 다운 것을 천성적으로 좋아하고, 특히 탐구심이 강한 이들은 진리를 향해서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움직이고 그것을 위해서 자기를 오롯이 바치는 일조차 있다. 무괄식 단락에서는 소주제문이 표면에 안 나타나더라도 독자가 그것을 쉽사리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위의 보기에서처럼 그 단락을 읽고 나면 누구나 소주제문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소주제가 잘 전개되지 못한 단락이라 할 수밖에 없다. 무괄식에서는 특히 이 점을 유의해서 소주제를 누구나 쉽사리 파악할 수 있게 서술하여야 한다. 무괄식 단락을 처음 익히고자 할 때는 소주제문을 따로 써 두고 두괄식 단락의 경우처럼 전개해 나가는 것이 한 방법일 것이다. 다음에서 그 보기를 살펴보고 각자 익혀 보도록 하자. 괄호( ) 안에는 소주제를 표시하였다. 이것은 물론 실제 글에는 안 나타난다. [보기 2.5] (소주제문 : 신식 며느리는 시골 시부모를 아랑곳하지 않는 일이 있다.) 내가 아는 사람 가운데 균 할머니로 통하는 분이 있다. 가난한 농사꾼의 몸으로 아들을 잘 가르쳐서 고시 파스까지 시켜 그 아들로 하여금 서울에서 호화 주택에 자가용까지 놓고 살기에 이르도록 하였다고 한다. 부잣집 따님을 며느리로 맞이한 덕분이기도 했으리라. 어느 날 금이야 옥이야 하는 손자놈의 돌을 맞아 늙은 내외분이 나의 어머니처럼 보퉁이를 들고 아들네 집을 찾아갔다고 한다. 행여나 옷에서 먼지라도 떨어지면 어쩔까 싶어 숨을 죽이며 발을 옮겨 딛어야 할 저택, 늙은이들의 어깨가 얼마나 으쓱했을까. 아장아장 손자놈이 걸어 나왔다. 얼마나 보고 싶던 핏덩이인가. 무심결에 "아이쿠 내 새끼야" 외치는 소리에 앞서 어느덧 손자는 할머니의 품속에 안겨 있었다. 뒤늦게 나오다가 이를 본 며느리가 질겁을 했다. 시부모님께 대한 인사는 저만두고 "저런 균이 옮으면 어쩔라고" 신경질을 부리며 아기를 빼앗아 가더라는 것이다. "닭 쫓던 개"란 이를 두고 한 말이렸다. <문도채, "균할머니" 중에서> 위 글은 소주제문이 표면에 안 나타나 있더라도 누구나 그것을 짐작할 수가 있다. 무괄식은 이렇게 소주제문을 잠재시켜서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알아서 파악하도록 하는 것이다. 무괄식 단락은 문예 작품 등에서 많이 쓰이지만 일반 설명문이나 논술문 등에서는 그렇게 바람직스럽지 않다. 그것은 아무래도 소주제가 뚜렷이 드러나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글을 처음 쓰는 이들로서는 제대로 된 무괄식 단락을 이루기가 쉽지 않다. 실제로, 무괄식 단락을 이루는 데는 상당한 글솜씨가 갖추어져야 한다. 소주제문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도 누구나 잘 파악할 수 있게 글을 엮어가야 하는 까닭이다. 따라서 글솜씨를 처음 가다듬는 이는 무괄식 단락의 형성법은 뒤로 미루고 그 기초가 되는 두괄식 단락을 이루는 법을 충분히 익혀두는 것이 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