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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구 '관촌수필'

청산은 2009. 5. 13. 16:00

관촌수필-일락서산(1972) / 이문구

 

 

화자가 직접 자신의 성장과정을 말하고 있는 수필 같은 소설이다. 충청도 특유의 사투리 와 1인칭 독백체의 문체는 작품 전체를 훈훈한 이야기로 이끌어간다. 산업화 과정에서 겪는 소 외, 갈등, 농촌의 어려움 그리고 그 해체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오늘을 사는 우리의 모습을 되돌 아보게 하는 동시에 삶의 반성의 계기로 삼고자 한다.

 

 

 

 

[줄거리]

 

화자는 오랫동안 고향을 등지고 타관에 떠돌아다니다가 20여 년 만에 할아버지 산소에 성묘차 고향을 찾는다. 그러나 기억 속에 고이 간직되어 있는 소년 때의 고향의 모습은 이제 찾을 길이 없게 되고, 소년 시절의 보금자리였던 옛집은 이제 기울대로 기울어졌다. 게다가 인격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던 어른들은 이제 모두 세상을 떠났고, 어릴 때의 정다운 친구들은 이제 모두 뿔뿔이 흩어져서 만날 길이 없다.

고색이 창연하던 옛 고향은 이제 추억 속에서만 맴돌 뿐 지금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고향의 모습은 근대화의 물결에 의하여 변모되어 가고 있는 생소한 고장인 것이다.

 

조상에 대한 긍지와 한산 이씨의 족보와 삼강 오륜 속에 살다간 전형적인 이조인(李朝人)이었던 할아버지는 소년 시절 나의 인격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으며 그 교훈은 지금에 있어서도 나의 일상 생활을 규제하는 중요한 바탕이 되고 있다.

 

 

 

 

[이해와 감상]

 

◈ <관촌수필(冠村隨筆)>은 연작소설이다. 『일락서산(日落西山)』,『화무십일(花無十日)』,『행운유수(行雲流水)』,『녹수청산(綠水靑山)』,『공산토월(空山吐月)』,『관산추정(關山芻丁)』,『여요주서(與謠註序)』,『월곡후야(月谷後夜)』의 여덟 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오랜 타관 생활 끝에 고향에 들러 옛 터전을 둘러보며 떠오르는 감상을 위주로 쓰고 있다. 중심이 되는 내용은, 6.25로 인해 집안이 풍비박산되고 타관 생활을 떠도는 주인공이 그 때를 회상하면서 불행을 초래한 시대적 의미를 형상화한 것이다. 제목에 '수필'이라는 말이 나오듯이, 이 작품이 하나의 회고담의 형식을 취하면서 지난날을 회고하는 에피소드들을 나열하는 가운데 소설적 구조를 꾀하고 있다.

 

◈ 주인공 '나'는 조상의 성묘를 위해 참으로 오랜만에 고향을 찾는다. 과거의 명문으로서의 명예와 권위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모조리 사라진 고향을 확인한다. 그 과거의 한복판에 자리한 어른은 '할아버지'이다. 할아버지는 명문 가문으로서의 명예심이 남달랐고, 품격을 지키는 삶을 살았으며, 의기와 선비로서의 긍지가 대단했던 분이다. 그런 할아버지로부터 주인공은 보수적 정신, 선민의식을 교훈으로 받았으며, 그것에 대해 부담스럽게 여기거나 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런 면에서 작가정신은 다분히 복고주의적이라 해도 좋다.

 

◈ 이 소설의 미학의 중요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문체이다. 고풍스런 말투, 한학적 소양이 없이는 알기 어려운 어구, 명문의 후예로서만 알 수 있는 세간과 풍습에 관련된 말들이 많아 독특한 매력을 풍긴다. 제재가 그렇더라 해도 이렇게 여실하게 표현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이렇게 능란하게 구사하는 것은, 작가 스스로가 그런 생활에 젖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 '나'가 고향 방문을 통해 받는 정서는 아픔이다. 실향민이란 말로 표현되는 정체성의 상실에서 오는 아픔이다. 그것은 물론 시대적 아픔(전쟁)의 소산이다. 전쟁은 이 긍지 높은 가족사를 단절시켰고, 그 상흔은 실향민 의식으로 남아 그를 여전히 괴롭힌다. 그가 아픔을 지속하는 한 전쟁의 참혹함은 계속된다. 작가는 이 자전적 소설에서 명문 후예로서의 긍지와 권위를 박탈당한 것에 대한 말할 수 없는 아픔에 젖어 있다. 따라서 그의 소설이 복고적 정신으로 그려진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 이 소설은 논란의 소지도 많지만, 급격한 시대 변화로 과거의 모든 것이 거의 사라졌지만, 우리의 내면에 아직도 드리우고 있는 전통적 생활의 품격 높은 일면은 하나의 가치로 자리하고 있다. 명문의 가풍은 부정적인 면도 있지만, 우리가 회복해야 할 드높은 정신적 기풍의 높이를 지녔던 것도 사실이다.

 

 

 

 

 

[핵심정리]

● 갈래 : 연작소설, 단편소설, 자전적 소설

● 배경 : 1970년대 어느 겨울, 충청도 관촌이라는 농촌 마을

●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 표현상 특징 : 1인칭 독백체로 서술(회고적)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생활어와 향토색 짙은 고유어의 사용

● 주제 : 한국 전쟁으로 인한 명문의 몰락과 그 후예의 명문의식

 

 

 

 

 

 

[더 알아 보기]

 

<관촌수필>은 1972년부터 1977년 사이에 쓴 여덟 편으로 이루어진 연작 소설이다. 이 여덟 편의 작품은 전체가 어떤 기승전결의 구조로 짜여 있는 것은 아니다. 제목 '수필'이라는 말이 암시하듯이 그때그때 화자의 기억이 흐르는 곳을 따라 어린 시절 고향에서의 삶이 회상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 1-5편 : 작가의 고향을 배경으로 하는 유년 시절의 추억을 그림

 

① 일락서산(日落西山)

 

② 화무십일 (花無十日)

 

③ 행운유수(行雲流水)

 

④ 녹수청산(綠水靑山)

 

⑤ 공산토월(空山吐月)

 

 

● 6편 : 어린 시절의 고향 친구를 만난 이야기

 

⑥ 관산추정(冠山秋情)

 

 

● 7-8편 : 커서 고향을 돌아보며 체험한 내용

 

⑦ 여요주서(麗謠註書)

 

⑧ 월곡후야(月谷後夜)

 

 

 

<관촌수필>의 주요 등장인물들의 모습과 성격은 다음과 같다.

 

 

● 할아버지 (작가의 조부 이긍식 옹, 1951년 작고)

 

고색창연한 조선인이었던 할아버지, 오직 그분 한 분만이 진실로 육친이요 조상의 얼이란 느낌을 지워 버릴 수 없는 거였고, 또 앞으로도 길래 그럴 것같이 여겨진다는 것이다.

 

사자(使者)를 맞아 마지막 숨을 거두며 남긴 유언은 '부디 족보만은 잘 간수해야 하느니라' 단 한마디 뿐이었다.

 

사당은 커다란 장지문을 가운데로 하여 널찍한 방이 둘이었다. 안방은 엿단지를 비롯한 온갖 군입거리들이 들어찬 벽장을 뒤로 하고, 정좌한 할아버지의 은둔처였다. 그 방에는 때를 기다리지 않고 검버섯 속에 고색이 찌들어가는 시대의 고아 이조옹(李朝翁)들의 집산장으로서 난세 성토장 겸 소일터였으며, 웃방은 아버지의 응접실이었다. 노인들이 풍기는 특유한 체취로 하여 여간 사람이 아니고서는 코도 들이밀 수 없으리라고, 어머니는 빨래를 할 적마다 웃으며 말했다.

 

 

● 대복 어머니 (할아버지댁에 드나들며 허드렛일을 하던 이웃집 여자)

 

나는 여태껏 그 대복 어매처럼 수다스럽고 간사스러우며 걀근걀근 남 비위 잘 맞추고 아첨 잘하는 여자를 본 일이 없는 줄로 안다. 그녀는 별쭝맞게도 눈치가 빨라 무슨 일에건 사내 볼 쥐어지르게 빤드름했고 귀뚜라미 알 듯 잘도 씨월거리곤 했는데, 남 좋은 일에는 개미허리로 웃어 주고, 이웃의 안된 일엔 눈물도 싸게 먼저 울어댔으며, 욕을 하려들면 안팎 동네 구정물은 혼자 다 마신 듯이 걸고 상스러웠다. 키도 나지리한 졸토뱅이로서 입 싸고 발 재고 손 바르며, 남의 말 잘 엎지르고 자기 입으로 못 쓸어담던 만큼은 내 앞엔 입대껏 다시 없을 만한 여자였다.

 

● 신현석 (6.25 때 좌익의 끄트머리에 붙었다가 옥고를 치르고 나온 관촌 부락의 석공. 일하기를 좋아하는 사내)

 

형무소에 들앉아 있는 동안 처자 다음으로 그립고 잡아보고 싶어 못 견딘 것이 낫, 호미, 쇠스랑이며 밤마다 귓전에 들려온 것이 도리깨 소리 탈곡기 소리였다고 실토하더라는 것이다. 그는 자기 집 농사에만 부지런을 피운 것이 아니었다. 이웃 동네 크고 작은 일에도 부러 빠진 적이 없었다. 추렴이나 비럭질로 마을의 곳집을 고친다거나 봇둑 보수가 있게 되면 으레 석공이 앞장서 나서야만 버르거지고 뒤틀림이 없었다. 특히 동네에서 죽은 어린애 관은 거의 석공 혼자서 지고 올라가 매장하기 일쑤였던 것이다. 들으나마나한 공치사 몇 마디 외엔 아무런 보수도 없던 일들... 수술하다 목숨 거둔 피투성이 이웃 송장도 혼자 업어 나르고, 술 취해 장바닥에 자빠진 사람은 도맡아 구완해 주기를 일삼고 있었다.

 

누가 그를 그런 사람이도록 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형무소에서 그토록 몸서리나테 참아애 했던 그의 소망, 그렇다 그 일을 그는 원이 없을 만큼 해냈던 것이다.

 

● 옹점이 (할아버지댁 부엌일을 도맡아 했던 16세 소녀)

 

그녀는 입이 걸고 성질도 사나왔지만 늘 시원시원하고 엉뚱한 데가 있었으며 의뭉스럽기도 따를 자가 없었다. 남다른 눈썰미로 한번 보면 못내는 시늉이 없었고 손속 또한 유별났으니 애써 가르친 바가 없어도 음식 맛깔과 바느질 솜씨는 어머니도 나무랄 수 없음을 진작에 선언한 정도였다. 할아버지가 나무라다 말 정도로 그녀는 무슨 노래든지 푸짐하게 불러대었고 목청도 다시 없이 좋았다.

 

 

 

[생각해 볼 문제]

 

1. 할아버지의 위상이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가?

⇒명문(名門)으로서의 명예심이 남달랐고, 생활의 기품과 선비정신이 드높았던 존재로 그려진다.

 

2. '나'가 자신을 '실향민'이라고 하는 내면풍경을 말해 보자.

⇒그가 타관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는 고향에 와서도 상실감에 젖어 있다. 과거의 온전했던 삶에 대한 그리움이 짙게 남아있는 한 실향민이란 생각을 떨칠 수 없을 것이다.

 

3. '나'가 고향 방문에서 정체성을 찾았다고 한다면, 그 정체성의 본질은 무엇인가?

⇒명문의 후예임과 명문의 가풍을 지녔던 시절을 회상하며 내적 자부심을 굳건히 가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