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언어, 그 쓰임의 관점들
청산은
2005. 6. 22. 21:28
약 알고 먹어야 치료효과도 크다
아스피린은 매우 오랜 역사를 지닌 해열제이다. 또 진통소염제로도 널리 알려진 약이다. 지금은 유사한 효능을 지닌 약들이 많이 개발돼 있어 선택의 폭이 넓어졌으나, 예전에는 열이 나거나 머리가 아플 때, 몸이 쑤실 때 이 약 500㎎ 한알을 복용하곤 했다.
지금도 아스피린은 자주 사용된다. 그러나 요즈음 많이 처방되는 용도는 해열진통 목적보다는 여러 질환에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혈전 생성을 방지할 목적인 경우가 많다. 이렇게 협심증이나 뇌졸중, 당뇨 환자에 있어 혈액순환을 개선하기 위해서 투여되는 때는 하루 100㎎ 정제를 하나 내지 세개쯤 복용할 정도로, 해열진통 목적보다 훨씬 소량을 사용한다. 어른에게 때로 이렇게 아스피린 자체나 위장장애를 개선시킨 아스피린 제제를 소량 투여하는 것은 기대 효과가 전혀 다른 경우인 것이다.
혈압강하제로 사용되는 테라조신이나 프라조신과 같은 약물은 한편으로 배뇨에 문제가 있는 환자에게 많이 사용된다. 즉 내과에서 쓰는 고혈압 약이 비뇨기과에서는 요실금 치료제로 자주 투여된다. 메토트렉세이트라는 유명한 항암제는 류마치스성 관절염 치료 목적으로 주 1~3회 복용하도록 처방되기도 한다. 항균제로 널리 알려진 에리스로마이신은 감염 치료시보다 훨씬 소량으로써, 당뇨환자의 위무력 증상시 위장관 운동을 개선시킬 목적으로 투여된다.
지금은 환자의 알 권리가 존중되는 시대이다. 원외처방전도 1부를 더 출력해 환자에게 주도록 되어 있다. 환자가 자신이 복용하는 약이 무슨 성분인지, 왜 복용하는지 평소에 정확히 알고 있도록 해야 약물치료 효과도 더 높게 나타난다.
손인자 서울대병원 약제부장 lux96@chollian.net
편집시간 2000년09월25일18시53분
한겨레/ 사설·칼럼/ 야!한국사회
[야!한국사회] 정보독점과 의약분업
영화로까지 만들어졌던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서는 금지된 서적에 대한 접근과 그로 인한 살인사건을 둘러싼 음습하기만 한 중세 수도원의 분위기가 잘 묘사되고 있다. 중세 유럽의 대학에서는 불빛을 전혀 밝히지 않은 캄캄한 상태에서 강의를 했다고 한다. 이유인즉슨 학생들이 교수의 강의내용을 필기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즉 교수들이 알고 있는 지식을 그들만이 독점하는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보호장치였던 셈이다.
인터넷이 세상을 조그만 컴퓨터 모니터 속에 집어 넣고 포르노그래피에서부터 온갖 고급 정보에 이르기까지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만들고 있는 오늘날, 중세 대학의 방식으로 지식을 독점하는 것은 이미 불가능한 일이다. 인류역사의 발전을 몇마디의 키워드로 요약하는 거대담론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이건만, 그래도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한마디로 표현해본다면 특정 계층의 전유물인 지식이나 정보가 점점 일반 대중에게까지 확대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각도에서 본다면, 특정 계층이나 집단이 독점해왔던 정보가 사회적으로 공개되는 것은 그 과정에서 발생할 여러 가지 부작용이나 기득권집단의 반발에도 궁극적으로는 진보의 방향에 서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국제유가의 폭등과 주가폭락, 쉴 줄 모르는 여야간의 정쟁 등 우리를 슬프게 하는 일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며 언제 끝날지 앞도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정부당국이나 해당 주체들이 해결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조차 의심스러운 의약분업 파동은 그 중에서도 단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으로 보인다. 10년이상 어렵게 의학공부를 한 대가가 생계걱정이나 하는 것이어서야 되겠느냐는 의사들의 항변을 들으면서, 그럼 당신들이 공부할 때 나는 놀았느냐는 속물스러운 반격을 날리고 싶은 마음 또한 굴뚝같다. 그러나 이 세상에 밥그릇의 크기가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100만원 벌면 1천만원 벌고 싶고 1천만원 벌면 1억원 벌고 싶은 게 인지상정일진대, 의사에게만 금욕(?)을 강요하면서 집단이기주의라 비난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어 보인다.
한 가지 신기한 사실은, 얼핏 생각하기에도 그동안 `벌 만큼 번' 선배의사들과 앞으로 정말 생계걱정을 해야 할지도 모를 젊은 의사들, 그래도 여전히 벌 만큼은 벌 수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명문 의과대학 출신의사들과 그렇지 못한 비명문대학 출신의사들, 막대한 시설과 재력을 가진 의료자본과 그 밑에서 고용돼 일하고 있는 의사들(이들을 의료노동자라 부른다면, 의사들은 모욕이라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정말 모욕감을 느껴야 할 쪽은 노동자들일런지도 모른다)의 입장은 천차만별로 다를 것이거늘, 어찌해서 의사집단 전체와 나머지 사회 전체 간의 대결양상으로 번져나가는 것인가라는 점이다.
밥그릇 문제는 차치하고 말하건대, 이는 아마도 의사라는 전문가집단이 갖는 특유의 자존심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대체조제 문제가 중요한 이슈의 하나가 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 근저에는 의사가 약사보다 전문적(!)이라는 인식이 반영돼 있다. 사실, 병원에서 받은 처방전 들고 약이 없어 미안하다는 동네약국을 거쳐 대형약국 한켠에 쭈그리고 앉아 한 시간씩 기다리다 보면, 문득 의약분업은 왜 하는거냐는 의문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비정상적인 의료수가구조 개선을 위해 결국은 국민들의` 호주머니에서 돈을 털어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 앞에서 분노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의약분업이 진보적인 것은 판독불가능한 영어로 휘갈겨쓰기 일쑤이던 처방전의 정확한 내용이 진료실 바깥으로 노출된다는 점, 따라서 의사들의 의료서비스에 대한 공개적인 검증이 가능해진다는 점에 있다. 그 어느 전문가집단도 중세 수도원에서와 같은 방식으로 자신들의 영역을 지켜나가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결국 `지는 싸움'이 될 수밖에 없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류동민/충남대 교수·경제학
편집시각 2001년02월15일02시37분 KST 한겨레/사회
[동서남북] “의사 아저씨”
설연휴를 앞두고 후배가 감기 걸린 아들을 데리고 동네병원을 찾았다. 병원은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들로 꽉차 있었다.
진료를 기다리던 후배는 병원을 찾아온 `소비자'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애써 못본 채하는 의사의 `불감증'에 서서히 부아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진료에 바쁜 의사의 얼굴 위로 지난해 더운 여름날 병원문을 닫고 집단행동을 벌인 의사들의 얼굴이 겹쳤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누구를 위한 의·약 분업인지에 생각이 미치자 환자를 맞기에 바쁜 의사의 얼굴에서 존경과 신뢰가 희미해졌다.
이때 간호사가 아들 이름을 불렀다. 진료실로 따라 들어가 안타까운 눈초리로 아들과 의사를 번갈아 쳐다 보다가 후배는 “아저씨 어째 괜찮겠습니까”하고 의사 `선생님'을 `아저씨'로 부르고 말았다. 의사는 거의 반사적으로 후배의 얼굴을 올려다 보더니 이어 얼굴이 약간 찡그러지는가 싶었고, 다시 한참동안을 무엇인가 생각한듯 하다가 처방전에 영어 문자를 갈겨 썼다. 그리고 후배가 아들을 데리고 진료실을 문을 나서려 할때 의사는 짜증반 웃음반의 얼굴로 “아저씨, 의사한테는 선생님이라고 부릅니다”는 말을 던지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후배의 `민심이반'을 들으면서 다른 후배들의 고소하는 표정에 놀랐다. 동아 새국어사전(문학박사 이기문 감수)과 국어대사전(이희승 편저)을 뒤져 우리가 흔히 쓰는 아저씨의 뜻 `혈연관계가 없는 남자 어른을 친근하게 부르는 말'을 찾았다. `선생님'은 `교사나 의사의 존칭' 외에 `남을 경대하여 호칭하는 말'임도 새삼 알았다. 사회통념을 빌리지 않더라도 사전에 나온 두 단어의 말뜻을 단순 비교하면 `선생님'은 존경과 신뢰의 호칭이요, 아저씨는 정답고 자상한 이웃에 대한 존칭이었다. 그럼 의사는 `선생님'일까 `아저씨'일까? 극히 일부로 전체를 매도할수는 없다지만 침묵하는 민심은 어느쪽일까?
인터넷에 들어가 <청년의사 목소리> 사설 `의사죽이기'에 대한 반론에 나온 어느 청년의사의 진솔한 `성찰'을 그대로 적고 싶다.
“의료계는 지난 투쟁을 통해 너무 아픈 상처를 많이 입었다. 정부로부터의 불신, 국민으로부터의 불신, 내부의 진통 등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린 것이 사실이다. 가장 통탄할 일은 국민들과의 사이가 멀어진 것이다. 의료계는 지금 의료개혁을 논하고 있고 다시 국민에게 사랑과 신뢰를 받을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국민들은 지금 `허준'식의 희생과 헌신을 의료인들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함께 살아갈' 의료인, 존경과 신뢰가 있는 `선생님'을 원하고 있다.
광주/박화강 기자hkpark@hani.co.kr
편집시각 2000년01월04일01시25분 KST
[국민기자석] '근로'를 '노동'으로 바꿔라
현행 노동관계법에 사용되고 있는 법률용어에 혼란스러운 점이 있다. `노동부'라고 하는 곳은 실업자이거나 취업자이거나를 막론하고 모든 국민의 고용 창출과 안정적인 노사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곳임에도 `노동'이라는 말과 `근로'라는 말을 무차별적으로 혼용해 노동관계법의 적용범위가 제멋대로인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노동부는 그 부처의 이름에 걸맞게 현행 근로기준법을 노동기본법으로 명칭을 변경하는 등 노동관계법에 사용되고 있는 `근로'라는 용어를 모두 `노동'이라는 용어로 바로잡아야 한다. 특히 애매하게 사용되고 있는 `파견노동자'라는 용어는 차라리 `용역노동자'라고 하여 적절한 다른 용어를 선택함으로써 법 적용에 혼선이 없게 해야 한다. 마침 새해 들어서 노동부가 비정규노동자와 단기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많은 조처를 취하고 있다고 하는데 더욱 근본적으로 노동법제를 일목요연하게 통합 정리할 뿐 아니라, 본법의 제정취지를 흐리게 하는 각종 시행령과 시행규칙도 하루속히
정비해주길 바란다. 아울러 불안정취업층의 양산은 물론 이중적인 고용구조 아래에서 발생하는 임금 착취와 인권 유린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현행 노동자파견법을 즉각 폐지해주길 바란다.
서한옥/서울 강서구 가양아파트
[표지이야기] 한글만 쓰면 국민이 건방져 진다
지난 96년 15대 국회가 구성되자 국회의원 명패를 한글로 쓰자는 서명운동이 펼쳐졌다. 컴퓨터 통신망의 한글 동호회를 중심으로 진행된 이 운동은 젊은층의 커다란 호응을 얻었으나, 국회는 예전대로 한자로 된 명패를 서둘러 제작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이에 앞서 14대 국회 초기에도 한글운동단체들이 직접 한글 명패를 만들어 국회에 전달했지만 헛수고였다.
국회에서 수난당한 한글 명패
선거용 홍보물에 한자를 쓰는 국회의원 후보는 없다. 그러나 당선되고 나면 곧바로 한자로 된 명함을 만들어 쓴다. 국회의원들의 한자 선호는 유별나다. 국회에서 투표하는 방식은 찬성이면 한글로 "가"나 한자로 "可"를 적고 반대하면 한글로 "부"나 한자로 "否"를 적는 것이다. 검표를 해보면 거의가 한자를 선택했음을 알 수 있는데, 틀리게 적거나 대충 모양만 흉내낸 어설픈 글씨가 심심찮게 발견된다고 한다. 무기명 비밀투표인데도 굳이 자신없는 한자를 고집하는 의식의 밑바탕은 무엇일까.
최근 문화관광부의 한자병용 추진 움직임에 삭발로 항의한 원광호 한국바른말연구원장은 14대 국회에서 홀로 한글 명패를 사용하다 동료 의원들로부터 "돈키호테" 취급을 받았던 인물이다. 그는 "한 나라의 국회에서 자기 나라말로 이름표를 만들어 달았다는 이유로 온갖 시비에 시달려야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이런 한자 선호의 밑바닥에는 권위의식이 깔려 있다"고 지적했다. "식모는 낮잠을 자고 사장은 오수를 즐긴다"는 웃지 못할 표현처럼, 문자나 용어를 달리함으로써 사회적 지위의 차이를 드러내 보이려는 생각이 은연중에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화비평가 홍성태씨는 한글 창제를 "소수 엘리트에게 독점되던 정보.지식을 만인에게 공개한 문화혁명"으로 평가하고 "대중교육의 성공도 바로 한글에 힘입은 것"이라고 말했다. 문자를 대하는 귀족주의와 민본주의의 대립을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를 최만리 집현전 부제학의 훈민정음 반대 상소문에서 찾아볼 수 있다. 훈민정음이 만들어질 당시에는 백성들이 어려운 형벌법규 때문에 억울한 처벌을 받고도 그것이 억울한 일인지조차 모르고 당하는 일이 많았던 듯하다.
"사람을 처형하는 데 있어서 죽이느냐 옥에 가두느냐 하는 사실을 그대로 정음자(훈민정음)로 바로 적어 무식한 백성에게 알려주면 억울한 형벌에 복종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 하나, 중국에서는 글과 말이 같은데도 원통한 재판이 있다. 재판의 불공평은 말과 글이 같지 않은 데에 있는 것이 아닌 즉 언문으로 재판의 공평을 기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
한글 판결문은 권위가 없다?
국민의 인권보다 문자의 권위를 앞세우는 이런 태도는 오늘날에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동안 "공문서는 한글로 써야 한다"는 한글전용법과 정부의 사무관리규정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법령은 한자투성이로 남아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憲法 第10條 [人間의 尊嚴性과 基本人權保障]모든 國民은 人間으로서의 尊嚴과 價値를 가지며 幸福을 追求할 權利를 가진다. 國家는 개인이 가지는 不可侵의 基本的 人權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義務를 진다.
刑法 第140條 [公務上秘密表示無效]1公務員이 그 職務에 관하여 實施한 封印 또는 押留 기타 强制處分의 表示를 損傷 또는 隱匿하거나 기타 方法으로 그 效用을 害한 者는 5年 이하의 懲役 또는 700萬원 이하의 罰金에 處한다.
한자를 웬만큼 관심있게 익히지 않고는 쉬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이들 문장의 행간에는 "피지배자인 국민은 법을 일일이 알지 못해도 괜찮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일본 것을 그대로 베끼다시피 한 우리나라 법률의 탄생과정이 그랬듯, 어려운 한자로 범벅이 된 법조문에는 일제시대의 지배논리가 계승되고 있는 셈이다.
법조문뿐 아니라 판결문에도 어려운 한자가 그대로 쓰이다 61년 조진만 당시 대법원장이 판결문을 한글화하도록 한 대법원 규칙을 발표했다. 그러자 대한변호사협회에서 이에 반대하는 건의문을 내는가 하면, 법조인들 사이에서는 "판결문을 한글로만 쓰는 것은 판결문의 권위를 떨어뜨린다"는 반발이 나오기도 했다. 판결문은 아직까지 표기만 한글로 할 뿐 어려운 한자어나 법률용어를 자주 쓰고 있으며 필요 이상 긴 문장으로 읽기를 어렵게 하고 있다.
권력기관과 함께 한자 사용에 앞장서온 것은 언론이었다. 공문서가 한글로만 씌어지는 동안에도 신문에는 한자가 버젓이 사용됐으며, 문장 가운데 한자를 그대로 노출시키는 한자 혼용에서 한글과 한자를 나란히 적는 병용으로 바뀐 것도 최근의 일이다. "한자를 몰라 신문도 읽지 못하는 반문맹자가 많다"는 논리가 그동안 한자 옹호론자들의 유력한 무기가 돼온 것도 사실이다.
50여년 전 법률로 한글전용을 못박고도 한자가 이처럼 끈질긴 생명력을 얻은 배경에는 이런 비민주적인 이데올로기와 더불어 한문교육을 받은 세대들이 느끼는 한자에 대한 향수가 자리잡고 있다. 한자는 그것을 아는 이들에게는 매력있는 글자다. 한글 전용론을 이끌고 있는 허웅 한글학회 이사장마저도 한자의 폐해를 강조하기에 앞서 "실로 한자는 중국 인민의 슬기를 증명해주는 좋은 본보기"라는 서두를 꺼낼 정도다. 어쩌면 이 세대의 몸과 정신에 배어든 습관의 작용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과거 한문교육을 배운 층의 기호의 문제일 뿐이다. 특히 이들이 주로 일제 시대에 교육을 받은 세대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글 문장에 한자를 섞어 쓰는 문체 자체가 일제의 언어동화 정책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또다른 심각한 문제점을 던져준다.
개항기 이전 우리나라의 문장은 한자만으로 쓰는 한문체와 순한글로 된 것 두가지였다. <한성순보>를 만든 일본인 이노우에가 1885년부터 이 신문에 국한문 혼용체를 쓰기 시작했다. 이노우에는 "나는 조선의 언문을 써서 우리나라(일본)의 가나와 통하는 문체를 창시했는데 이를 보급해 조선인이 사용하게 하면 피아 양국은 동일한 문체의 나라가 되고 이로써 문명지식을 함께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문화관광부의 한자병용 발표 직후 열린 한-일 외무장관 회담에서 고무라 마사히코 일본 외무장관이 "한자의 공식 약자를 정할 것이라면 일본식으로 만들어달라"는 말을 건넸다거나 최근 한글 전용론자들의 항의시위에 일본 언론이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도 예사롭지 않은 모습이다. 한글전용실천추진회는 이런 일본의 태도를 우리나라 문화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한자병용을 은연중 부추기는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지적 우월감을 얻기 위한 폭력"
굳이 사대주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완전한 한글세대인 젊은층의 반응은 한자병용 방침의 설자리를 잃게 한다. 정부 발표 이후 각 컴퓨터 통신망을 달아오르게 하는 찬반토론에서는 반대의견이 압도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한 네티즌은 한자 사용 주장에 대해 "그것은 일반인들에게 고급수학을 강요하는 것처럼 비효율적이고 무의미한 일"이라며 "엘리트들이 지적 우월감을 얻기 위한 폭력에 불과하다"고 항의했다. 아무런 불편없이 한글을 써온 이들에게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결정은 권위주의를 넘어 일종의 폭력으로 다가오는 듯하다.
박용현기자 piao@mail.hani.co.kr
화장장->승화원, 납골당->추모의 집으로
장묘용어 새로 선정-선호도 조사 6000건 접수
국민들은 화장장과 납골당을 대신할 새 말로 '승화원'과 '추모의 집'을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사실은 한겨레신문사와 서울시, 한국장묘문화개혁범국민협의회(장개협)가 장묘 관련 시설의 새 이름을 찾기 위해 실시한 '장묘 용어 선호도 조사' 결과 4일 밝혀졌다. *관련기사 13면
한겨레신문사 등이 화장장 등 장묘 시설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해소하고 장묘문화 개혁을 앞당기기 위해 지난 9월14일부터 이달 9일까지 실시한 이번 조사에는 모두 5946건(이메일 3926건, 엽서 2020건)이 접수돼 새 장묘 용어에 대한 국민들의 높은 관심을 반영했다.
이 가운데 중복 접수를 하거나 조사 내용을 적지 않은 경우 등 무효 건수(819건)를 뺀 5127건을 대상으로 선호도를 집계했다.
집계 결과 화장장은 '승화원' 3821건, '정화원' 1306건으로 승화원이 두배 이상 높은 선호도를 보였으며, 납골당의 경우 '추모의 집'이 2234건으로 '추모관'(1659건)과 '추모당'(1234건)을 큰 차이로 제치고 새 이름으로 뽑혔다.
이에 따라 서울시와 장개협은 앞으로 정식 법률 용어가 필요한 경우말고는 화장장을 승화원으로, 납골당을 추모의 집으로 각각 부르게 된다.
'승화원' 선정 이유로는 "고체에서 기체로 바뀌는 승화 현상이 죽은 뒤 한줌 가루가 되는 현상과 비슷해 언어적 동질감을 느낀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추모의 집'에 대해서는 "'추모관' '추모당'에 비해 종교적 분위기가 덜하다" "맺음말이 '집'이라는 우리말로 끝나 친근한데다 가까이에 있는 느낌을 준다"는 것을 선정 이유로 꼽았다.
김영철 기자 yckim@hani.co.kr
기사시각 : 1998/08/25 10:10
'판결문 쉽고 짧게쓰라' / 대법원 권장사항 하달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웠던 판결문이 쉬워진다. 대법원은 25일 그동안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웠던 판결문을 쉽고 짧게 쓰도록 '판결서 작성방식에 관한 권장사항'을 마련해 전국법원에 내려보냈다. 권장사항에 따르면 어려운 법률용어는 쉽게 풀어쓰고, 문장은 되도록 짧게 끊도록 했다. 판결 이유는 문장식으로 늘여쓰던 방식을 벗어나, 가.나.다, (1)(2)(3) 등의 번호를 매겨 요약하도록 했다. 김의겸 기자
기사 분야 : 정치
등록 일자 : 2000/10/08(일) 17:19
"검사들 한글실력은 얼마~" 법무부 평가시험 '화제'
법무부가 제554회 한글날인 9일 평소 전문적인 한자법률용어 등을 많이 사용하는 검사와 일반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글실력을 평가하기 위한 우리글 바르게 쓰기 시험을 실시키로 해 화제다.
이번 시험은 띄어쓰기와 철자법 표준어 외래어 표기법 등 우리말 전반에 걸친 실력을 1시간에 50문항을 통해 평가하게 된다.
법무부 관계자는 "결재가 끝난 공문서에도 띄어쓰기 철자법 등 맞춤법과 어법(語法)에 대한 오류가 많이 발견돼 공문서 작성시 각종 어문규범 준수를 생활화하도록 이번 행사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이번 시험에서 최우수상 및 우수상을 받은 사람들은 부서별로 '공문서 바르게 쓰기 점검관'으로 지정돼 공문서에 대한 교정역할을 맡게 된다.
법무부는 이와 함께 앞으로 일상업무에서 우리말 바로쓰기 문화가 정착되도록 국립국어연구원이 펴낸 한국어문 규정집을 각 사무실에 두고 문서 작성시 참조토록 할 방침이다.
법무부는 또 한글학회를 비롯한 전문기관에 검찰의 공소장과 불기소장 등 각종 문서의 양식과 표현에 대한 분석작업을 의뢰해 개선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교정 분야 등의 전문용어 순화작업도 추진키로 했다.
<양기대기자>kee@donga.com
기사 분야 : 정치
등록 일자 : 2000/05/24(수) 19:37
[법 Digital]법률단어 띄어쓰기 읽어 한글 맞춤법 맞춰야
‘등록취소또는해산된정당의잔여재산에대한국고귀속절차에관한규정’, ‘도시저소득주민의주거환경개선을위한임시조치법시행령’
법률 제목을 읽다 보면 숨이 찬다. 단어사이 띄어쓰기를 전혀 하지 않기 때문이다. 3개 이상, 많게는 수십개 단어의 조합으로 이뤄진 글이 한 칸의 여백도 없이 빽빽하게 붙어 있다.
법률 제목들을 모두 붙여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법제처 법제기획과 이상희 서기관은 “정확한 표기를 필요로 하는 전문용어를 띄어쓰게 되면 문장 속에서 오히려 헷갈리기 쉽고 차지하는 분량도 너무 많아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53년 법령을 처음 만들 당시 띄어쓰기가 없는 일본법을 그대로 따랐고 그 관행이 아직까지 이어져오는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그러나 최근 법률의 한글화 표기 운동이 진행되고 실제로 한글로 작성된 법원서류가 일반화되면서 법률 제목도 띄어쓰기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양대 국문학과 김정수 교수는 “한글의 특성상 단어를 모두 붙여 쓰면 이해하기가 어렵다”며 “낫표나 따옴표를 사용해 법명의 시작과 끝을 분명히 해 주면 법률용어를 띄어쓰는 것도 문제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법제처에서도 이런 문제점을 의식해 19일 열린 ‘법률한글화추진위원회’에서 법명을 띄어쓰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지만 현행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법조인들은 “읽기 어려울 정도로 긴 법명은 실제 많이 사용되지도 않는 데다가 전문용어는 붙여서 하나의 ‘블록’으로 사용해야 쓰기 편리하다”고 말하고 있다. 법률제목은 아무래도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하지 못할 ‘글자들의 모임’으로 계속 남을 전망이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동아일보
기사 분야 : 사회
등록 일자 : 1998/08/25(화) 14:54
법원 판결문 달라진다…어려운 용어 순화-문장도 간결하게
일반 국민들에게 어렵기만 했던 법원의 판결문이 간결하고 이해하기 쉽게 바뀐다.
대법원은 25일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판결서 작성방식에 관한 권장 지침」을 마련, 이날부터 전국 법원에서 시행토록 했다.
이 지침은 어려운 법률용어를 순화해 쉬운 용어를 사용하고 문장은 되도록 짧고 간단하게 작성해 법률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또 그동안 법률요건에 따른 논리적 작성에 치중했던 것과는 달리 실질적이고 중요한 쟁점에 한해 판단을 밝힘으로써 소송 당사자들이 핵심 사항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판결 이유도 사안에 따라 문장식이 아닌 나열식 기재가 가능토록 하고 형사무죄판결의 경우 배척하는 증거에 대해 일일이 이유를 기재하지 않고 취지만 간단히 적시할 수 있도록 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조치로 소송 당사자들의 이해가 향상돼 재판결과에 대한 승복도가 높아질 것』이라며 『또 법관들의 판결문 작성 업무 부담도 줄어 재판진행이 보다 충실하고 신속해지는 효과도 기대된다』고 말했다.<연합>
대법원 보도자료 (1998.08.31)
판결서 작성 간이화
- 쟁점 중심의 이해하기 쉬운 판결서 작성 -
1. 개 요
○ 판결서 작성 간이화 방안 시행
- 대법원은 충실한 심리를 전제로 판결을 보다 간이하고, 이해하기 쉽게 작성
하는 것을 골자로 한 '판결서 작성방식에 관한 권장사항'을 마련하여 시행
하기로 함.
2. 검토배경
○ 판결서 작성 시간을 단축시켜 소송의 촉진·심리의 충실을 도모함
- 법관들의 시간과 노력이 판결서 작성에 지나치게 편중된다면 법원이 현재 당면하고 있는 시급한 과제인, 집중심리, 친절한 재판, 시차제 소환, 효율적인 소송지휘, 장기미제사건의 해소 등은 쉽게 해결되기 어려움.
- 장문의 판결서보다는 충분한 사전 준비를 통하여 쟁점이 생생하게 부각된 재판을 진행함으로써 소송당사자들에게 친절한 재판을 진행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상급심의 판단에 도움을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음.
- 결국, 소송에 투여되는 법관의 시간과 노력을 효율적으로 배분하여 소송의 촉진과 심리의 충실을 도모하고자 함.
○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쉬운 판결서 작성 필요
- 종전의 판결서 작성방식은, 법률요건과 입증책임분배의 원칙에 따른 논리적 작성에 치중한 결과, 당사자가 치열하게 다툰 부분과 쟁점에 관계없는 사소한 부분이 비슷한 비중으로 취급되는 등으로 비법률전문가인 일반 소송 당
사자들로서는 핵심적인 판단 사항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렵고, 정작 중요 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에 대한 판단이 소홀하다는 느낌을 갖게 되기도 하였음
- 이에, 판결서를 짧고 간단하게 작성하는 방안을 마련하여 일반인들이 판결의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함
○ 판결서 작성에 관한 법관의 부담 경감 필요
- 법관들은 종전 판결서 작성 방식에 따라 사안의 경중과 종류를 가리지 않고 변론에 나타난 모든 주장과 증거에 대한 판단을 빠짐없이 나타내기 위하여 판결서 작성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있음
- 특히, 형사 판결서의 경우에는 무죄의 심증을 굳힌 후에도 공소사실에 부합 하는 증거를 일일이 찾아내어 그 배척 이유를 자세히 기재하느라 많은 정 신적촵시간적 부담을 갖게 됨
3. 달라진 작성방식의 구체적 내용
▶ 보다 짧고, 한층 쉽고, 가급적 주요 쟁점별로 ◀
- 어려운 법률용어를 순화하여 쉬운 용어를 사용하고 문장은 되도록 짧게 작성하여 일반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음
- 필요한 경우에는 증거의 표시를 생략할 수 있도록 하였음
- 실질적이고도 주요한 쟁점에 한하여 판단을 표시할 수 있도록 하였음
- 사안에 따라 판결 이유를 문장식으로 기재하지 아니하고 나열식으로 기재할 수 있도록 하였음
- 형사 무죄판결의 경우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증거를 배척할 때 그 취지만 기재하고 이유를 생략할 수 있도록 하였음
4. 외국의 판결서 작성례
○ 미국
- 사실심의 배심재판에 있어서는 배심원의 평결에 대하여 판사가 이를 추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 경우 "판결 이유"를 붙이지 아니하며, 판사가 배심원의 평결을 뒤집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이유를 붙임
- 비배심재판의 경우 승소판결을 받은 당사자가 법정에서 구두로 선고한 내용을 필기하여 법원에 제출하면 판사가 이를 승인하는 것으로 판결 이유에 갈음함
○ 영국
- 구두로 판결을 선고하고 판결서를 작성하지 아니함
- 판결 이유 부분은 녹음 또는 속기하였다가 사건이 항소되면 이를 문서화하여 항소법원에 송부함
- 소송대리인이 있는 경우 쌍방 대리인은 합의 하에 구두로 선고된 판결 이유를 요약하여 법원에 제출하고 판사가 이에 서명하면 이를 항소법원에 제출함
○ 독일
- 당사자가 항소를 포기하거나 항소하지 않을 것이 명백한 때에는 판결 이유를 붙이지 아니하고, 당사자가 판결 이유를 원하지 아니하면 판결 이유를 붙이지 아니함(이 경우 수수료 감면의 혜택이 있음)
- 상대방이 법정에 출석하지 않는 결석재판의 경우(의제자백촵공시송달)에는 판결 이유를 붙이지 아니함
○ 프랑스
- 판결 이유에서 증거관계는 기재하지 아니함
○ 일본
- 피고가 다투지 아니하는 사건의 경우(자백촵의제자백촵공시송달)에는 판결서를 작성하지 아니하고 재판소 서기관이 변론조서에 구두로 선고한 판결의 내용을 기재함
5. 효과
○ 소송의 촉진·심리의 충실을 통한 국민의 재판에 대한 승복도 제고 및 사법부에 대한 신뢰 회복
- 판결서 작성에 소요되는 시간과 노력을 대폭 감소하면, 주 2회 변론기일을 실시하는 등 여분의 시간을 심리과정에 투입함으로써 소송을 촉진시킴은 물론 소송당사자의 주장을 충분히 경청할 여유를 갖게 되고, 시차제 소환을 보다 활성화하여 실시할 수 있게 되는 등 심리의 충실을 기하게 되어 국민의 재판결과에 대한 승복도를 높이고, 그 결과 사법부의 대한 불신을 해소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게 됨
○ 일반인의 판결문 이해도(理解度) 제고
- 쟁점중심으로 가급적 쉽고, 짧게 판결서가 작성됨으로써 일반인들이 판결 이유를 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됨
○ 판결서 작성에 관한 법관의 업무부담 경감
- 법관들이 판결서 작성의 부담에서 벗어나 보다 신속하고 친절한 재판을 할 수 있게 됨
별첨자료) 간이판결 예시
간이 판결 예시
I. 청구원인촵항변촵재항변 등과 이에 대한 판단을 순차로 기재하는 방법(종전
작성방식)
이 유 별지목록기재 부동산이 소외 망 홍명선의 소유이었는데 그가 1984. 7. 10. 사망한 사실, 피고 김인호가 현재 위 부동산을 점유 사용하고 있는 사실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고, (증거)를 종합하면,
원고는 위 망 홍명선과 소외 이숙자 사이에서 출생한 혼인 중의 자인 것처럼 출생신고를 하여 호적부상 원고가 위 홍명선의 친생자로 등재된 사실, 위 홍명선에게는 달리 직계비속이나 처 등 재산상속인이 없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반증이 없는 바, 위 인정사실에 의하면 원고는 위 출생신고에 의하여 위 홍명선의 자로 인지되어 친생자가 되었고, 그 후 위 홍명선의 사망에 따라 위 부동산의 소유권을 단독상속하였다고 할 것이므로, 피고 김인호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고에게 위 부동산을 인도할 의무가 있다.
이에 대하여 피고는 위 홍명선으로부터 위 부동산을 임차한 바 있으므로 원고의 청구에 응할 수 없다고 항변하므로 살피건대, (증거)에 의하면 피고는 1980. 1. 20. 위 홍명선으로부터 위 부동산을 임차보증금 70,000,000원, 월 차임
금 500,000원으로 정하여 임차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반증은 없으나, 한편 (증거)에 의하면 위 임대차계약의 기간이 1983. 1. 20.까지 3년으로 약정된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반증이 없으므로, 위 임대차는 이미 그 기간이 만료되었음이 역수상 분명하여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종료되었다 할 것이니 이를 지적하는 원고의 재항변은 이유 있다.
그런데 피고는 위 임대차가 묵시적으로 갱신되어 아직 종료되지 아니하였다고 재재항변하므로 살피건대, (증거)에 의하면 위 임대차 기간이 만료된 후에도 피고는 위 부동산의 점유사용을 계속하여 왔고, 위 홍명선도 별다른 이의 없이 종전 차임을 그대로 지급받아 온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반증이 없는 바, 그렇다면 위 임대차에 관하여는 묵시적 갱신의 효력이 생겨 당사자 사이에서 다시 종전 임대차와 동일한 내용으로 기간의 정함이 없는 임대차를 한 것으로 보게 되었다 할 것이므로 피고의 위 재재항변은 이유 있다.
이에 대하여 원고는 위와 같이 갱신된 임대차계약이 다시 해지되었다고 주장하므로 살피건대, (증거)에 의하면 위 홍명선은 1984. 6. 20.에 같은 해 4. 및 5. 분의 차임이 연체되었음을 이유로 피고에게 위 임대차계약 해지의 의사표시를 하여 그 의사표시가 피고에게 도달된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반증은 없으나, 한편 (증거)에 의하면 피고는 1984. 4. 20. 및 같은 해 5. 20. 당시 위 홍명선으로 부터 차임수령 권한을 수여받았던 소외 심수일에게 각각 그달분의 차임을 지급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이에 반하는 (증거)는 믿지 아니하고 반증이 없으므로, 위 두 달분의 차임 연체사실을 전제로 위 1984. 6. 20.자 해지의 유효를 내세우는 원고의 주장은 이유 없다.
그러나, (증거)에 의하면 위 홍명선의 사망 후인 1984. 7. 20. 원고가 피고에게 위 임대차계약의 해지통고를 하여 그 해지통고가 그날 피고에게 도달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반증이 없으므로, 기간의 약정 없는 위 임대차계약은 그로부터 6월이 되는 1985. 1. 20.을 경과함으로써 해지의 효력이 생겨 종료되었다 할 것이니, 이 점에 관한 원고의 주장은 이유 있고, 위 임대차의 존속을 전제로 점유권원이 있음을 주장하는 피고의 위 항변은 이유 없음에 돌아간다.
다음 피고는 위 임대차계약 상의 보증금을 원고로부터 반환받기까지는 원고의 청구에 응할 수 없다고 항변하므로 살피건대, 피고가 1980. 1. 20. 소외 망 홍명선으로부터 위 부동산을 임차보증금 70,000,000원, 월 차임 금 00,000원의 약정 아래 임차하고 위 보증금을 지급한 사실, 그 후 위 임대차계약이 1985. 1. 20.의 경과로써 해지된 사실은 앞서 본 바와 같으므로, 원고는 위 피고에게 위 보증금 70,000,000원에서 위 부동산 인도일까지의 연체차임 기타 위 임대차에 관하여 발생한 모든 채권액을 공제한 나머지 금액을 반환할 의무가 있고 이 의무와 피고의 위 부동산 인도의무는 상호 동시이행관계에 있다 할 것이다.
나아가 원고가 반환의무를 지는 금액에 관하여 살피건대, (증거)에 의하면 피고는 위 임차일로부터 1984. 5. 20.까지의 차임을 모두 변제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반증은 없으며(피고는 그밖에 같은해 6. 20.까지의 차임을 변제하였다고 주장하나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한편 위 임대차종료후에 있어서 피고의 점유사용으로 인하여 얻는 이익액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위 부동산을 보증금 70,000,000원에 타에 임대할 경우 얻을 수 있는 차임액이라 할 것인바, 1985. 1. 부터 1985. 7.까지 위 부동산을 위와 같은 보증금 약정 아래 임대할 경우 차임으로서 월 금 600,000원을 받을 수 있는 사실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고, 그
후 위 차임액이 변동하리라는 점을 인정할 별다른 증거가 없으므로 결국 위 보증금에서 우선 연체차임인 1984. 5. 21.부터 임대차종료일인 1985. 1. 20.까지의 8월 간의 차임연체액 금 4,000,000원(500,000원×8)이 공제되어야 하고, 이어 1985. 1. 21.부터 위 부동산인도일까지는 월 금 600,000원의 비율에 의한 차임 상당 의 부당이득금이 공제되어야 할 것이다.
또 원고는 피고의 보증금반환채권 중 일부가 타인에 의하여 압류 및 전부되었다고 재항변하므로 살피건대, (증거)에 의하면 소외 김갑순의 신청에 따라 1985. 8. 1. 서울민사지방법원에서 피고의 원고에 대한 위 보증금반환채권 중 금 7,000,000원 부분의 채권에 대하여 압류 및 전부명령이 발하여졌고, 그 결정이 1985. 8. 3. 제3채무자인 원고에게 송달된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반증 없으므로 원고의 위 재항변은 이유 있다.
따라서 원고가 반환의무를 지는 보증금 잔액은 위 금 70,000,000원 중 위 연 체차임액 4,000,000원과 위 김갑순에게 전부된 7,000,000원을 공제한 59,000,000 원에서 1985. 1. 21.부터 위 부동산 인도일까지 월 금 600,000원의 비율에 의한 금원을 공제한 나머지 금원이라 할 것이므로, 피고는 원고로부터 위 금원을 지급받음과 상환으로 원고에게 위 부동산을 인도할 의무가 있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원고의 청구는 위 인정 범위 내에서는 정당하여 이를 인용하되, 그나머지 청구는 이유 없어 이를 기각하고, 소송비용의 부담에 관하여는 민사송법 제89조, 제92조를, 가집행선고에 관하여는 민사소송법 제199조를 각 적용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II. 인정사실 또는 배척된 주장을 일괄 기재한 후 판단을 기재하는 방법(새로운 작성방식 1)
이 유 1. 인정사실
가. 명도 부분
(1) 별지목록 기재 부동산은 원래 홍명선의 소유였는데, 그가 1984. 7. 10. 사망 하여 현재는 그의 상속인인 원고가 소유하고 있다.(다툼이 없음)
(2) 피고는 1980. 1. 20. 위 홍명선으로부터 위 부동산을 임차보증금 7천만원, 월차임 50만원, 임차기간은 1983. 1. 20.까지로 정하여 임차한 후 점유사용하여 오고 있다.
(3) 위 임대차계약은 임차기간이 종료된 후에도 묵시적으로 갱신되어 기간의 정함이 없는 임대차로서 존속되어 오다가, 원고가 1984. 7. 20. 피고에게 해지통고를 하여 같은 날 피고에게 도달하였다.{{) 1984. 4월분과 5월분의 차임연체를 이유로 한 원고의 해지 주장은 피고의 변제사실이 인정되어 배척되었는데, 이 점에 관한 판단은 주문을 도출하는데 필요 불가결한 사항이 아니고 아래 나. (1) 의 인정사실 속에 묵시적으로 판단되었다고 보아 명시적인 판단을 생략하였음 }}
나. 금원지급 부분
(1) 피고는 1984. 5. 20.까지의 차임만 지급하였을 뿐 그 이후의 차임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
(2) 1984. 5. 21.부터 1985. 1. 20.까지 8개월 간의 연체차임은 4백만원이고, 그 이후의 차임상당액은 월 60만원이다.
(3) 소외 김갑순은 1985. 8. 1. 위 보증금반환채권 중 7백만원에 대하여 압류 및 전부명령을 받아 그 명령이 그 달 3. 원고에게 송달되었다.
다. 증거
갑 3 내지 5, 을 1, 증인 ○○○
2. 판단
(1) 위 임대차계약은 원고의 해지 통고일인 1984. 7. 20.부터 6개월이 경과한 1985. 1. 20. 종료되었으므로, 피고는 원고에게 위 부동산을 명도하여야 한다.
(2) 다만 부동산의 명도와 동시이행으로, 원고는 피고에게 보증금 중 잔액 5천 9백만원(7천만원 - 4백만원 - 7백만원)에서 1985. 1. 21.부터 부동산의 명도시까지 매월 60만원의 비율에 의한 금원을 공제한 나머지 금원을 지급하여야 한다.
III. 기판력의 범위에 관한 사항과 쟁점에 한하여 이유를 기재하는 방법(새로운 작성방식 2)
이 유 1. 사건의 요지
원고가 소유권에 기하여 피고를 상대로 별지목록 기재 부 동산의 명도를 구함에 대하여 피고는 임차권 항변 및 보증금 반환의 동시이행 항변을 하고 있다.
{{ 원고의 소유권 유무는 이 사건의 실질적 쟁점이 아니므로 자세한 판단을 생 략하였음}}
2. 임대차의 존속 여부
(1) 인정사실
피고는 1980. 1. 20. 위 홍명선으로부터 위 부동산을 임차보증금 7천만원, 월차임 50만원, 임차기간은 1983. 1. 20.까지로 정하여 임차한 후 점유사용하여 오고 있다.
위 임대차계약은 임차기간이 종료된 후에도 묵시적으로 갱신되어 기간의 정함이 없는 임대차로서 존속되어 오다가, 원고가 1984. 7. 20. 피고에게 해지통고 를 하여 같은 날 피고에게 도달하였다.
{{ 1984. 4월분과 5월분의 차임연체를 이유로 한 원고의 해지 주장은 피고의 변제사실이 인정되어 배척되었는데, 이 점에 관한 판단은 주문을 도출하는데 필요 불가결한 사항이 아니고 아래 3. (1)의 인정사실 속에 묵시적으로 판단되었다고 보아 명시적인 판단을 생략하였음}}
(2) 증거
갑 3 내지 5, 을 1
(3) 판단
위 임대차계약은 원고의 해지 통고일인 1984. 7. 20.부터 6개월이 경과한 1985. 1. 20. 종료되었으므로, 피고는 원고에게 위 부동산을 명도하여야 한다.
3. 보증금의 반환 여부
(1) 인정사실
피고는 1984. 5. 20.까지의 차임만 지급하였을 뿐 그 이후의 차임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
1984. 5. 21.부터 1985. 1. 20.까지 8개월 간의 연체차임은 4백만원이고, 그 이후의 차임상당액은 월 60만원이다.
소외 김갑순은 1985. 8. 1. 위 보증금반환채권 중 7백만원에 대하여 압류 및 전부명령을 받아 그 명령이 그 달 3. 원고에게 송달되었다.
(2) 증거
증인 ○○○
(3) 판단
부동산의 명도와 동시이행으로, 원고는 피고에게 보증금 중 잔액 5천 9백만원 (7천만원 - 4백만원 - 7백만원)에서 1985. 1. 21.부터 부동산의 명도시까지 매월 60만원의 비율에 의한 금원을 공제한 나머지 금원을 지급하여야 한다.
편집시각 2000년10월06일20시56분 KST
한겨레/경제/소비자/유통
[상표] 예뻐라! 우리말 상표
나들잇벌·빨개면·한올
소비재를 중심으로 우리말 상표를 단 상품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6일 롯데백화점이 한글날을 앞두고 매장에서 판매되는 우리말 상표 상품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식품류와 생활용품·의류의 경우 한글 상표가 지난해보다 10~20% 늘었다.
식품부문에서 올해 선보인 이름에는 `한입떡복이'(풀무원) `너비아니'(제일제당 햄) `빨개면'(오뚜기 라면) `짜요 짜요'(서울우유 짜먹는 요구르트) `뚝심'(목우촌 햄) `못난이'(대림수산 어묵) 등이 있다. 식품 이름에 우리말이 단골로 등장하는 것은 안전성이 중시되는 먹거리 특성상 신토불이를 앞세워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는 점을 소비자들에게 강조하기 위해서다. 어린이들이 외국어보다 우리말 이름을 잘 기억하고 발음하는 것도 이유다.
생활용품에는 경제성을 강조한 우리말 이름이 많이 선보이고 있다. 애경산업 주방세제 `한방울', 옥시 섬유유연제 `한올', 쌍용제지 치킨타월 `오래오래' 등이 대표적이다.
특정 소비층을 지향하는 이름도 나와 있다. 엘지 생활건강의 샴푸·오일·로션 상표 `혼자서도 잘해요'는 유아층을, 여성의류 데코의 `지지베'는 신세대 여성고객을 타깃으로 한 상표들이다.
그동안 `베이비'나 `키즈'라는 영어 단어가 들어간 상표가 대부분이었던 유아복·아동복도 `무냐무냐' `아이들' `작은신' `나들잇벌' 등의 우리말 이름을 붙인 옷들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윤영미 기자youngmi@hani.co.kr
편집시각 2000년05월16일19시26분 KST
한겨레/경제/광고마케팅/CF이야기
[CF이야기] '상표' 고유명사냐, 보통명사냐
잔칫날 단골음식인 `동그랑땡'이란 이름은 참 절묘하다. 누가 언제 붙였을까?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제일제당은 지난 89년 냉동식품 `고기순대'를 내놓았다. 그러나 `순대'라는 이름이 주는 지저분한 이미지와 `순대는 역시 시장순대'라는 선입견으로 판매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때 한 직원이 “`동그랑땡'으로 이름을 바꿔보자”는 제안을 했고, 결과는 대히트였다. 원래 이름이 `고기전'인 `동그랑땡'은 아예 보통명사가 됐다.
이름 하나로 제품 생명이 좌우되는 경우는 의외로 많다. 91년 동양제과는 `님에게' 초콜릿을 출시했다. 그러나 당시 시장을 선점한 롯데 가나초콜릿의 아성을 조금도 뚫지 못했다. 장고 끝에 이름을 `투유'로 바꿨다. 그 이후는 다 아는 이야기다. 매출이 10배 이상 뛰었다. 상표이름이 큰 인기를 얻자 기업이름을 아예 상표명으로 바꾼 경우도 많다. `대교'가 `눈높이'로, 보라유통산업이 아가방으로, 쌍녕섬유가 쌍방울로, 동양맥주가 오비맥주로, 조선맥주가 하이트맥주로 바꾼 것 등이 이에 속한다.
최근 우리말 상표가 힘을 얻고 있지만, 수출용 제품의 경우 국내이름을 그대로 쓸 때 외국 현지에서는 이상한 뜻으로 해석되기도 해, 수출용 이름을 아예 바꾸는 예도 많다. 삼성전자의 고급 냉장고 브랜드인 `지펠(Zipel)'은 원래 독일시장에서 `최고'라는 뜻의 `Zipfel' 브랜드로 수출하려했다. 그런데 이 이름에 독일어로 `남성 성기'라는 뜻이 있음을 뒤늦게 알고 부랴부랴 `f'를 뺐다. 태평양의 아모레는 이탈리아어로 `거리의 여자'라는 뜻이 있음을 몰라 낭패를 봤다. 지난 98년 SK로 이름을 바꾼 `선경'은 선경의 영문표기가 `Sunk Young'(젊어서 가라앉다)으로 들려 고민을 했었다.
반대로 외국이름이 국내에 들어와 이상한 의미로 들린 경우도 있다. 지난 82년 당시 MBC청룡의 백인천 감독이 모델로 나왔던 영양제 `게브랄T'는 이름 때문에 많은 놀림을 받곤 했다.
상표이름을 두고 경쟁사들끼리 제소를 불사하는 일도 심심치 않게 벌어지는데, 대부분 “`고유명사'이므로 함부로 쓰면 안된다”, “아니다. `일반명사'니까 아무나 써도 된다”는 점이 시빗거리다. 초코파이, 정로환, 모시메리 등이 이런 송사에 휘말린 적이 있다.
경쟁사가 비슷한 제품을 비슷한 상표명으로 맞붙여 김빼기 작전에 나설 때도 있다. 지난 90년 코카콜라가 미국에서 대히트를 친 레몬향 사이다 `스프라이트'를 국내에 출시하자, 롯데칠성은 칠성사이다를 지키기 위해 캔색깔도 비슷한 녹색으로 처리한 `스프린트'를 내놓아 소비자들의 혼란을 고의로 유도했다. 롯데칠성의 물귀신 작전에 스프라이트는 결국 고사하고 말았다.
한겨레 기사시각 : 1997/12/30 10:22
'외제상표 찬밥시대 우리말 상표로' / 전북환경련.황토현문화연 우리이름 거저 지어줘
"쉽고 아름답고 주변 환경과도 어울리는 환경친화적인 우리말 이름을 거저 지어드립니다."
전북환경운동연합과 황토현문화연구소가 역사와 문화적 환경에 어울리는 우리말 이름지어주기 운동을 펼치기로 했다.
두 단체는 사람이름은 물론이고 가게와 상표.건물.도로.회사.모임.학교.어린이집 이름에 이르기까지 이름붙일 수 있는 모든 것들의 이름을 새로 지어줄 계획이다.
이들이 '작명사업'에 뛰어든 것은 구제금융시대를 맞아 비싼 로열티를 지불하는 외제상표와 외래어 이름을 단 제품들이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는 소식이 계기가 됐다.
외래어 상표를 사용한 업체들이 외제로 오인돼 소비가 줄어들자 뒤늦게 외제가 아님을 홍보하는 나서는 웃지 못할 일을 보고 차제에 가게와 상표이름도 우리말 이름으로 바꿀 것을 권유하기로 한 것이다.
두 단체는 지난해 '전주 옛지명찾기운동'에도 앞장서 전주시의회가 시내 공공건물과 거리, 학교, 다리 따위의 이름을 새로 짓기 위한 '명칭제정위원회' 조례를 제정한 바 있다.
황토현문화연구소 신정일 소장은 "백년을 써도 새이름같은 은근하고 신선한 우리말 이름을 무료로 지어주겠다"며 "구제금융시대를 맞아 쉽고 친근한 우리말 이름을 단 상표들이 경쟁력을 지닐 것"이라고 말했다. (0652)86-7977.
전주/임석규 기자
한겨레 기사시각 : 1997/11/05 10:27
전북 쌀상표 외래어`EQ2000' 도마에 / 한글아닌 영어사용 비판여론...이미 포장재도 나와
전북지역을 대표하는 농산물의 이름과 상표를 영어로 지은 데 대해 비판적인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전북도와 농협전북본부가 전북지역에서 생산되는 쌀이름과 농특산물공동상표로 각각 확정지은 'EQ 2000'과 'HELLO CHONBUK'이 여론의 도마위에 오른 것이다.
비판 의견의 핵심은 왜 하필이면 쉽고 좋은 우리말 놔두고 어렵고 낯선 외국말을 상표로 했느냐는 점이다. 대표적인 농도인 전북도에서 생산되는 쌀과 농산물에 외래어 이름을 붙일 이유가 하등 없으며, 수출용이 아닌 내수용 쌀에 굳이 영어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은 설득력을 얻고 있다. 또 'EQ 2000'의 2000은 '이천'으로 발음돼 경기도 '이천쌀'과 혼동될 우려가 있다는 문제점도 제기됐다.
'HEIIO CHONBUK'은 더욱 문제다. 경박한 느낌을 주는데다 한국전쟁 당시 어린이들이 미군들에게 비스켓 따위를 구걸할 때 썼던 말을 떠올린다는 지적이다.
공모때 '녹두쌀', '파랑새쌀', '노령쌀', '만경창파' 따위의 괜찮은 우리말 이름들이 나왔었지만 이미 포장재까지 'EQ 2000'으로 나온 상태여서 현실적으로 바꾸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전북도는 이런 지적이 일리가 있다고 보고 아직 상표등록을 마치지 않은 'HELLO CHONBUK'을 없애고 농특산물공동상표를 내수용과 수출용 두 가지로 나누기로 했다. 도는 수출용에는 'BEST QUALITY CHOLLABUKDO'라는 영어상표를, 내수용에는 '품질최고 고객만족'이라는 한글상표를 각각 달아 다음달께 특허청에 상표등록 절차를 밟을 계획이다. 이 공동상표는 팥.콩.김치.한우.인삼.목기 등 전북도내에서 생산되는 11개류 134개 품목의 농특산물에 함께 사용된다. 전주/임석규 기자
젊은 애국심에 불질러라 / 네티즌 선택 합리적이면서도 감성적 경향 뚜렷
'흔글815' '잠뱅이' / 토종한테 몰표
네티즌들은 일반 소비자와는 다르다. 거의 매일 정보의 바다를 항해하는 이들은 젊고, 세상의 변화에 민감하다. 그만큼 소비에서는 합리적이고 감각적이라는 평을 받는다. 이들 네티즌한테서 올 한해 동안 가장 사랑받은 상품은 어떤 것일까?
네티즌들의 필수품 가운데 으뜸인 노트북 컴퓨터 부문에서는 삼성전자 센스가 가장 큰 인기를 끌었다. 센스는 무게가 1.9kg에 불과해 무엇보다 들고 다니는 데 부담이 없어야 하는 노트북 컴퓨터의 조건을 만족시켰다. 피시통신 부문에서는 데이콤 천리안이 단연 선두였다. 지난 85년 국내 최초로 피시통신 서비스를 시작한 천리안은 피시통신의 '산 증인'으로 통한다.
한국휴렛팩커드가 만든 프린터 'HP데스크젯'은 조사대상 네티즌의 64%가 인기상품으로 꼽아 다른 경쟁자들을 큰 차이로 따돌렸다. 일반 소비자 조사에서 수위를 차지한 삼성전자 마이젯을 압도적인 표차로 눌렀다. 가장 작은 잉크방울을 이용해 사진을 찍은 것처럼 뽑아 내는 기술력이 높은 점수를 얻었다.
한글과 컴퓨터의 '아래아+한글 815'는 워드프로세서 부문에서 압도적인 인기를 끌었다. 한글과 컴퓨터가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에 넘어가려 할 때 적극적으로 구명운동을 펼쳤던 네티즌들의 애국심을 떠올리게 하는 결과다.
청바지 부문에서도 네티즌들의 애국심이 힘을 뽐냈다. 국산 청바지 '잠뱅이'가 유명 외국산을 제치고 몰표를 받았다. 순 우리말 상표를 사용한 잠뱅이는 감각적인 광고를 앞세워 국산은 촌스러운 것으로 여기던 경향을 몰아냈다. 불고기버거처럼 우리 입맛에 맞는 음식을 강조한 패스트푸드점 '롯데리아'와, 얼큰한 국물맛이 특징인 농심 '신라면'도 인기상품 대열에 올랐다.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하이트' 맥주가 1위를 했지만, 광고를 보기 위해 텔레비전 채널을 바꾼다는 네티즌들에게는 랄랄라로 유명한 '오비라거'가 인기상품으로 꼽혔다. 휴대폰 애니콜은 일반 조사에서와 마찬가지로 네티즌들에게서도 최고로 사랑을 받았다. 빨대를 꽂아 길에서 마시는 '컵 커피'라는 개념으로 기존 캔커피와 차별화한 매일유업 '카페라떼'도 큰 인기를 모았다.
구강청정제 부문에서는 동아제약의 '가그린'이 가장 높은 점수를 얻었고, 휴대폰과 경승용차 부문에서는 높은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애니콜'과 '마티즈'가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필름 부문에서는 전통의 강호인 한국코닥의 '코닥골드필름'이 최고를 차지했다. 이지은 기자
한겨레 기사시각 : 1997/07/06 09:56
우리말 상표가 뜬다
눈에 띄고 / 쉽게 알수 있고 / 친근하고 / 기억에도 남고
"우리 정서가 물씬 배어 있는 고운 우리말 상표를 찾아라."
각종 상품에서 부르기도 어려운 서구식 이름 대신 우리말을 찾아 사용하는 업체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우리말 제품들은 이름만 들어도 어떤 상품인지 쉽게 알 수 있어 친근하고 기억에도 오래 남기 때문이다.
가랑이가 넓은 홑바지를 일컫는 잠방이에서 이름을 딴 '잠뱅이'는 외제 브랜드 바람을 유난히 타는 청바지 시장에서 중저가 청바지 상표로 젊은층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지난 85년 서울 신촌 대학가에 처음 가게문을 열었을 때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촌스럽다며 상표를 떼달라고 요구하거나 영문으로 표기된 상표를 달아달라는 주문이 많았다. 그러나 이젠 잠뱅이라는 커다란 상표가 선명하게 드러난 청바지를 입고 다니는 젊은 층들을 길거리서 쉽게 만날 수 있다.
김소월의 시 '진달래'에서 따온 신발 브랜드 '즈려밟고'도 이름 하나로 성공한 경우다. 지난 76년 충남 논산읍 장터의 조그만 가게에서 출발한 신발 제조업체 팀웍은 91년 즈려밟고라는 자체브랜드를 개발한 뒤 매출이 급성장해 이제는 전국에 50여개의 전문매장을 갖춘 여엿한 패션화 전문업체로 성장했다.
또 외제 유명상표가 판을 치고 있는 수영복 시장에서 '짚신' 수영복은 뛰어난 제품의 질로 소비자들의 인정을 받아 당당히 고가 브랜드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 업체가 대부분 국내용에 머물고 있다면 순순한 우리말 상표로 세계시장 진출에 성공해 명성을 쌓아가고 있는 업체도 있다.
피혁 전문업체인 기호상사는 '가파치'라는 이름으로 국내 시장은 물론 중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 시장을 파고 들고 있다. 가파치는 가죽신을 만드는 우리말 갖바치에서 따온 말로 영문으로 표기하면 니나리치나 구치 같은 외국 유명브랜드가 연상되는 효과까지 덤으로 거둘 수 있었다. 기호상사는 가파치 덕택에 남대문시장에서 벨트와 지갑을 만들던 영세업체에서 이제는 외국 유명브랜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업체로 성장했다.
특히 가전제품에서만큼은 우리말 상표가 계속 나오면서 꾸준한 대접을 받고 있다. 최근에 출시된 제품들만 해도 보송보송세탁기(대우전자) 통돌이세탁기(엘지전자) 따로따로냉장고(삼성전자) 여보세요전화기(대우통신) 등 우리말 서술형 제품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밖에 팬시브랜드 세네라미(세모 네모 동그라미 합성어) 화장품브랜드 식물나라(제일제당) 과일나라(동양화장품)나 김삿갓.곰바우(보해) 참나무통맑은소주(진로) 누비라(대우자동차) 등도 우리말을 사용해 인기를 모은 제품들이다.
물론 이런 우리말 상표가 꼭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브랜드를 전문으로 지어주는 회사인 인터브랜드코리아의 김성제 사장은 "우리말 상표는 장점도 많지만 영문으로 표기했을 경우 엉뚱한 의미가 되는 등 해외시장에 진출할 때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며 "단순한 영문 이름을 사용할 때보다 치밀한 브랜드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함석진 기자
한겨레 기사시각 : 1998/03/29 11:43
뱀처럼 지혜로운 애국
내의 한 벌을 선물로 받은 적이 있다. 눈에 익은 재래식 디자인에 흔한 재질의 평범한 내의인데도 세계적인 유명 상표가 붙어 있었다. 내의에 묻어온 양말 또한 매일반이었다. 수십년간 꿰어본 가늠으로 눈 없는 내 발마저도 금세 알아볼 수 있으리만큼 친숙한 모양의 그 양말 어느 구석에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디자이너의 손길이 닿았을 거라고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이런 추세로 나가다가는 피에르 가르뎅 한복, 네슬레 고추장, 던힐 이쑤시개 따위의 등장도 시간 문제라는 생각이 얼른 들었다.
국내에 진출해서 한창 호황을 누리던 외제 고급 의류와 화장품 코너들이 백화점으로부터 속속 철수하고 있단다. 그 전에는 외래어 상표의 국산품이 외제로 오인되어 회사가 망하는 사태도 일어났다. 심지어 순수 우리말 상표임에도 어감이 외래어를 연상시키는 탓에 도산의 비운을 맞는 웃지 못할 일마저 벌어지기도 했다.
외래어 상표의 `자업자득'
외제 상표를 빌려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와 자체 상표를 가진 회사들 사이에 무엇이 진정한 국산품인가를 따지는 광고 전쟁도 한바탕 요란하게 치렀다. 이 모두가 경제위기의 심각성을 일깨우는 음울한 풍경들이라서 한편으로 서글픔을 느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로 하여금 상표의 중요성에 다시금 주목케 만드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늘날 상점에 진열된 상품의 거개가 외래어투성이다. 상표는 물론 설명문까지 외래어라서 겉을 봐도 속을 봐도 어느 나라 제품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길거리에 나서보면 상점의 간판들 또한 외래어 범벅이라서 낯선 외국땅을 밟은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지경이다.
표기만 한글로 했을 뿐 말과 뜻은 분명 외래어인 간판도 숱하게 눈에 띈다. 우리말을 기묘하게 꼬고 비틀고 늘여 빼서 외래어인 척 행세하려는 국적불명의 옥호들도 간판에 흔히 등장한다. 사람들 역시 외제를 가장하는 것이 유행이다. 멀쩡한 신체발부를 유행에 맞추어 알록달록 물을 들이고 인공을 가해서 타고난 바탕을 확 뜯어고치는 등으로 한껏 훼손해서 한국인 아닌 다른 인종으로 보이려고 안간힘 쓰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해찬들, 찬마루, 산내들...
외제를 선호하는 풍조가 유행하는 것은 사실이다. 외래어 상표나 상호의 범람은 바로 그런 유행 풍조에 영합하려는 상술의 반영일 것이다. 하지만 거꾸로 뒤집어 생산과 소비의 관계를 보자면, 국산을 외제로 가장하는 얄팍한 상술이 오히려 외제 선호를 잔뜩 부추기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경제위기를 맞아 갑자기 달라진 소비성향 속에서 외래어 상표 또는 외래어 어감을 풍기는 상표들이 된서리를 맞게 된 것은 실상 자업자득의 결과인 셈이다.
국산품만 애용하자는 뜻은 아니다. 과소비를 물리치는 건 좋은 일이지만, 수출만이 살 길인 나라에서 맹목적인 외제 기피 사고는 강대국들의 또 다른 통상 압력을 불러들이기 십상이다.
국제화 시대에 '이리 가운데 양' 같은 약소국민의 '비둘기같이 순결한' 애국은 전혀 통하지 않는다. 이런 때일수록 '뱀 같이 지혜로운' 애국을 해야 한다.
우리 국민의 모국어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시비할 강대국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말 사랑의 정신으로 국민 모두로부터 사랑받고 민족적 자부심을 심어줄 수 있는 고유의 우리말 상표를 개발해서 세계적인 명품으로 키우는 일은 큰 애국 행위에 속한다. 당장 수출품에 우리말 상표를 붙이기가 좀 거식하다면 우선 국내 소비 위주의 상품부터라도 적용하기 바란다.
해찬들, 찬마루, 산내들 등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담은 상표는 얼마나 신선한가. 이번 국산품 논쟁을 통해 우리 모두 중대한 교훈을 얻었으면 좋겠다.
기사 분야 : 사회
등록 일자 : 2000/06/02(금) 11:00
[e포터]유아대상 상표도 외국어 남용심각
외국어 브랜드명이 넘쳐나고 있다.
전혀 외국어를 접해 보지 않은 유아 대상 브랜드도 대부분이 영어나 불어가 많다. 그 브랜드를 선호하는 엄마들까지도 무슨 뜻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외국어로 된 상표도 있다.
태화쇼핑(부산 서면 소재)의 유아, 출산용품 코너에 입점한 브랜드는 <아가방>과 <두손모아> 를 제외하면 국내 개발 브랜드임에도 불구하고 <해피아이> <해피랜드> <유베라> <쁘띠앙팡> <쇼콜라> <베비라> 등 80%가 웃도는 대다수가 외국어를 사용하고 있다. 아동용품점의 경우에도 <뉴 골든> <미키클럽> <푸우> <키즈클럽> 등 외국어 사용에 해외 캐릭터를 사용한 제품이 압도적이었다.
또, 롯데백화점(부산점)의 경우에도 <아가방>을 제외한 <파라코반베이비> <쇼콜라> 등 모든 상표가 외국어로 돼 있었고, <작은신>이라는 아동신발 전문코너를 제외하고는 대다수가 영어나 불어로 된 조합어가 많았다.
6개월된 아기엄마인 김지영씨(부산시 남구,29세)는 "우리말로도 얼마든지 예쁘게 아기옷 상표를 만들 수 있는데도 외국어로 된 브랜드가 많아 가끔은 입에서 얘기하기가 낯설기도 하다"고 말했다.
오윤주 <동아닷컴 인터넷기자> ohnara@my.donga.com
기사 분야 : 사회
등록 일자 : 1998/10/08(목) 19:04
[틈으로 보는 세상]우리말 상표 갈수록 인기
잠뱅이, 해찬들(해가 가득찬 들녘), 누비라(세상을 누빈다) ….
친근하고 참신한 이름의 한글상표가 영어 등 외국어상표를 능가하고 있다.
한글상표 이름짓기 전문회사인 이름고을(대표 박항기·朴伉基)이 최근 서울시내 15∼39세 남녀 1천5백15명을 상대로 실시한 ‘우리말 상표’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이번 조사에서 “같은 제품이라면 한글상표를 선택하겠다”는 대답이 1천1백1명(72.2%)으로 지난해 보다 12.2%가 늘어난 반면 외국어상표는 22.2%가 줄어든 2백85명(19.7%)에 불과했다.
한글상표를 택한 이유는 친근감(19.9%) 애국심(15.9%) 참신성(9.1%) 등이었으며 외국어상표는 세련미(28.0%) 고급이미지(16.1%) 익숙함(8.7%) 등이 선택 이유였다.
최고의 한글상표는 청바지 잠뱅이(8.3%)가 차지했으며 고추장 등 식품상표인 해찬들(6.1%)과 대우자동차 누비라(5.6%), 화장품 식물나라(3.6%) 등이 뒤를 이었다.
박대표는 “전체상표의 15%밖에 안되는 한글상표가 이처럼 인기를 누리는 것은 외국어상표의 범람으로 한글상표가 오히려 더 참신해보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